이상철교수의 건강과 행복 메시지
이상철교수의 건강과 행복 메시지
  • 현대일보
  • 승인 2020.02.09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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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철학의 삼총사(2)

또 한 가지 일화가 있다. 김태길과 안병욱은 김형석보다 건강과 체력이 좋은 편이었다. 김태길이 김형석을 만나면 “바람이 불어서 김 선생이 못 오거나 늦을 줄 알았는데 바람에 날아가지 않고 제 시간에 도착 했네“라고 하면서 농담을 했다. 김태길은 90을 앞두고도 자기의 테니스 실력은 모두가 알아준다고 하면서 자랑을 했다. 

안병욱도 자주 김형석의 건강을 걱정해 주곤 했다. 김형석은 말했다. 나는 일찍부터 안병욱이 나보다 장수할 것으로 믿고 있었다고 말이다. 그러나 김형석은 장수와 관련해 이런 말을 했다. 보통 사람의 생각과 다르게 젊었을 때 몸이 약한 사람이 장수하는 경우가 더 많다. 항상 조심하고 무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운동선수 보다는 체력이 약해 보이는 사람이 오래 사는 경우도 많다.

이와 관련해 김형석은  철학자인 칸트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칸트는 300년 전 80년을 살았다. 당시로는 장수한 셈이었다. 그는 왜소하고 건강에 있어서는 열등생 이었다. 산책 외에는 운동을 했다는 기록이 없다. 무엇이 그를 장수하게 했는가? 학문에 대한 열정과 일이었다고 했다. 일이 건강을 유지해 주었다고 했다.  

자신의 장수에 대해 김형석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김태길 보다 10년은 더 장수하고, 안병욱보다 5-6년은 더 일하고 있다. 한 가지 이유가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병약하게 자랐기 때문에 건강에는 절대로 무리를 하지 않았다. 100세인 지금 까지도 그렇다. 피곤하거나 힘들다는 생각이 들면 무조건 휴식을 취한다.    

둘째, 안병욱과 김태길은 김형석이 연세대학 철학과 교수로 있을 당시, 시기는 서로 다르지만 연세대학 철학과 교수를 역임 하다가 안병욱은 숭실대학 철학과 교수로 적을 옮겼고, 김태길은 서울대학 철학과 교수로 이적했기 때문에 이들 셋은 자연스럽게 더 친한 사이가 됐다. 김형석이 연세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한 것은 1953년 이었다. 시간 강사로 시작했다. 1년 뒤 철학과 전임 교수가 됐다. 31년 후인 1985년 정년퇴임 하고는 특수대학원이나 대학관계 기관 및 행사에서 강의나 강연을 했다. 2016년 봄에도 고위 과정과 의과대학 교수들을 위한 강의에 참여했다. 그렇게 보면 63년간을 일했다. 자랑스럽기 보다는 고맙고 감사하게 생각 한다고 했다. 물론 건강이 허락했고 여건이 채워진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이 없이는 불가능 했을 것 이라고 했다. 그 노력은 계속 배우고 공부한 덕택이었다. 지식에 대한 관심과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32세부터 97세까지 한 대학과 크고 작은 인연을 가졌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긴다고 했다. 

김형석과 안병욱의 인연은 이렇게 맺어졌다. 김형석이 연세대 교수가 된지 얼마 후였다. 그는 당시 지성사회를 대표하는 월간지 사상계에 “현대의 본질”이라는 원고를 기고했다. 사상계 편집위원회에서는 김형석의 글을 사상계 권두언 논문으로 게재했다. 그때 편집장을 맡고 있던 이가 바로 안병욱 이었다. 아마 안 선생이 “나에게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김 교수는 말했다. 그때부터 김 교수도 안 선생의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

몇 해 후에 안병욱 선생이 연세대 철학과 교수로 부임해 왔다. 사상계 장준하 사장이 백락준 총장에게 추천했을 것이라고 했다. 안병욱은 그렇게 부임해 왔다가 곧 숭실대학으로 적을 옮겼다. 그러다가 김형석과 안병욱은 1961년 여름 미국에 교환교수로 함께 가면서부터는 더 없이 가까운 사이가 됐다. 다음해 여름에는 김형석과 안병욱 그리고 서울대학의 한우근 교수(역사학) 셋이서 세계일주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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