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교수의 건강과 행복 메시지
이상철교수의 건강과 행복 메시지
  • 전진호
  • 승인 2019.12.08 17:18
  • icon 조회수 2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화선진국으로 가는 길(4)

이같이 청교도에 의한 정착인 들은 교회참여가 필수적이고 또 교회에 참여하면 누구나 성경을 읽고 독서를 해야 했다. 이를 위해 매시추세츠 주는 엄격한 교육제도를 실시했다. 한 마을에 50가구가 들어서면  아이들에게 읽기, 쓰기 그리고 산수를 가르칠 수 있는 초등학교를 설립하고, 100가구가 들어서면 대학에 가기위한 고등학교(grammar school)설립을 의무화 하는 법이 제정 됐다. 

그러므로 매사추세츠 주에는 영국의 청교도들이 정착한지 6년(미국 이민이 시작 된지 36년)만에 하버드 대학(1636)이 설립됐다. 하버드 대학은 목사인 존 하버드의 독서를 위한 책과 재산기증으로 설립 됐다. 하버드 대학 설립의 1차적인 목적은 유능한 성직자를 양성하는데 있었다. 하버드는 대학설립을 위해 400권의 책과 전 재산의 절반을 기증했다.

미국에서 대학이 이같이 빨리 설립된 것은 종교적 이유 외에 정치적 이유도 있었다. 미국에는 1619년 의회제도가 도입되어, 정치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와 의회에 대한 전문지식이 필요했다. 그러므로 초기 정치인들의 자손들은 목사, 변호사, 판사, 주지시 등이 되기 위해 하버드 대학을 다녔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버드대학을 포함해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8대 명문 사립대학들은 거의가 영국의 식민지 시대에 설립됐다. 이들 대학을 설립순위별로 보면 하버드대(1636), 예일대(1701),  펜실베이니아대(1740), 프린스턴대(1746), 컬럼비아대(1754), 브라운대(1760), 다트머스대(1767) 순이고, 코넬대학(1865)만이 영국으로 독립(1776)된 후에 설립됐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1924년 경성제대(경성제국대학)가 설립됐으나 일본 총독부가 설립했다고 해 서울대학의 역사적 사실자체를 부인한다. 경성제대는 우리나라가 해방이 되면서 경성대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폐교 후  1946년 서울대학으로 변신했다. 경성제대는 일본대학이고 일본제국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대학의 역사는 1924년이 아니라 1946년 이라는 것이다.

이는 마치 한국방송사의 시점을 일제가 방송을 시작한 1927년 이 아니라 1945년 해방 후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과 같다. 한국방송의 시초를 1927년으로 보기 어려운 근거로 ① 1927년에 개국한 경성방송국은 일제하에서 일인을 위해 설립됐고 ② 이 방송은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서 통치하기위한 수단으로 사용됐고 ③ 일제하의 방송은 한국인과 한국문화 발전에 도움이 되기 보다는 해가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것이며 역사가 단절될 수 없다는 원칙에 위배된다. 역사의 구성요소는 地,時,人이다. 경성제대가 아무리 일인에 의해 설립됐다 해도 그것은 엄연히 우리 땅(地)에서 설립됐기 때문에 서울대학의 역사가 되는 것이 마땅하다. 

역사의 본질은 역사적 사실이 아무리 치욕적이라도 이를 부인하거나 단절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왜 그와 같은 역사적 수난을 겪지 않으면 안 됐는가 하는 분석과 반성 비판을 통해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데 있다.        한국인의 독서 율은 저조하다. 1차적인 책임은 교육에 있다. 한국에서 교육의 목적은 정신, 문화 발전을 위한 독서가 아니라 오로지 자녀를 더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공부에 국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의 독서 율 또한 저조하다. 한국 대학생은 한 강좌 당 한 학기에 2.9권의 전공도서를 읽는데 선진국의 대학생은 7.9권의 책을 읽는다.   

한국의 교육은 공부하는 것과 독서하는 것을 구별하는데 문제가 있다. 모든 교육은 독서가 아닌 공부에 치중한다. 모든 학생들은 좋은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에 전념한다. 공부가 끝나도 제대로 직장을 얻지 못하면 직장을 얻기 위해 입사 공부를 한다. 공부는 독서와 달리 학교나 직장을 얻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우리의 모든 학교 교육은 입학이나 입사를 위한 준비과정으로 전락했다. 이런 암기식 교육은 일단 목적을 달성하고 나면 무용지물이 된다.

그래서 학교 선생은 독서하는 학생에게 공부는 안하고 독서만 한다고 꾸짖는다. 한국인들은 독서란 학생이나 젊은이들이 좋은 학교나 좋은 직장에 가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독서란 학생이나 젊은이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일단 학교를 떠나거나  나이가 들면 책과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다음호에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