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교수의 건강과 행복 메시지
이상철교수의 건강과 행복 메시지
  • 현대일보
  • 승인 2019.11.0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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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사와 행복(7)

5. 사회봉사

그는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 외에 별도로 대학의 영자신문 학생기자들이 영문으로 기사를 써오면 영문교정을 도맡아 해 주었다. 나도 그로부터 오래동안 영문교정을 받았기 때문에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됐다.  

하버드 대학이 위대한 것도 공공봉사 비율이 그 어떤 대학 보다 높은데 있다. 하버드 대학 학부 학생들의 50%이상이 공공봉사를 한다고 한다. 최근에는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려면 재학 중 반드시 해외에 나가 봉사를 해야 한다고 한다.

김용은 1959년 서울서 출생했고 5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에 이민을 왔다. 그는 아이오아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총학생회장에 선출 될  정도로 봉사와 리더십이 강했을 뿐 아니라 수석으로 졸업을 했다. 그는 아이비리그인 브라운 대학에 입학을 했다. 

그는 대학에 입학을 하자 아버지에게 앞으로 철학과 정치학을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치과의사인 아버지는 정치학과 철학도 중요하다. 하지만 아시아계 미국인으로 성공하려면 우선 자신을 먹여 살릴 직업이 필요하니 의사가 된 다음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다.

그는 아버지의 조언을 받아들여 브라운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 우등으로 졸업했다. 그리고 의사가 되기 위해 아이비리그 가운데서도 최고 명문으로 꼽히는 하버드 의대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1991년 32살 때 의학박사 학위를 땄다. 2년 뒤인 1993년에는 하버드 대학의 인류학 박사 학위도 취득했다.

인류학 박사를 딴 것은 자신의 관심 분야를 넓히기 위한 것이었다. 김용은 아버지의 권유대로 실용적인 학문인 의학을 공부했고 어머니의 조언대로 인문학과 철학도 공부했다고 말할 정도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극진한 사랑과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그는 철학자인 니체가 말한 “역경은 사람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고 하는 가르침이 자신의 생애에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김용은 어려서부터 어떻게 하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할수 있을까 하는 것이 꿈이었다. 그는 28세의 하버드 의대 대학 시절인 1987년 자신의 꿈을 실천하기 위해 친구인 폴 파머와 함께 자선의료봉사단체인 파트너스 인 헬스(Partners in Health)를 설립했다. 김용은 사회봉사 활동 속에서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았다. 그는 주위의 생각과는 달리 20년 동안 파트너스 인 헬스를 이끌어 의욕적인 봉사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김용은 봉사활동을 통해 남을 돕는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봉사활동을 통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로부터 더 밚은 것을 배운다고 생각했다. 그는 남미의 페루, 아이티 그리고 아프리카의 르완다, 심지어는 시베리아 감옥까지 달려갔다. 김용은 특히 결핵과 에이즈와 맞서 싸웠다. 그의 노력으로 아이티의 결핵환자 10만 명 가량의 목숨을 구했을 것이라고 했다.

김용은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위해 20년 간이나 의료봉사와 사랑의 봉사를 한 결과 “동양인 최초”라는 별명이 그를 따라 다녔다. 김용은 44세인 2003년 동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천재 상”으로 불리는 맥아더 펠로 상을 받았다. 그는 다음 해 동양인 최초로 세계보건기구(WHO)의 에이즈 국장에 임명됐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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