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교수의 건강과 행복 메시지
이상철교수의 건강과 행복 메시지
  • 현대일보
  • 승인 2019.06.23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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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복산, 한국 언론과 언론학의 개척자 (16)

곽복산은 1954년 3월9일 홍익대학에 한국 최초로 신문학과를 설립했다. 그는 초대 주임교수이자 한국최초의 신문학 교수가 됐다. 그는 전임교수로 최준, 임근수, 김광섭 그리고 박동운을 초빙했다. 김광섭과 박동운은 언론 현업에 종사하면서 교수직을 겸했다. 홍익대학의 신문학과는 1958년부터 1960년까지 5회 졸업생, 총 52명을 배출했다. 그후 문교부의 대학설치기준령의 미달로 폐과됐다.  홍익대학에 신문학과를 창설할 무렵부터 중앙대학에서 신문학 강좌를 맡아오던 과복산은 대학에서 두 번째로 1957년 4월 중앙대학교 법정대학에 신문학과를 창설했다. 그는 초대 주임교수로서 홍익대학 시절 동료 교수였던 최준과 임근수를 전임교수로 다시 초빙했다.

곽복산은 1957년 중앙대학에 신문학과를 창설한 이후  1971년 60세로 타계할 때 까지 14년간 중앙대학에 근무하면서 대내외 적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우선 내적인 업적을 보면 첫째, 홍익대학의 신문학과가 1960년 대학시설기준령 미달로 폐과 되자 홍익대학에 다니던 재학생들을 원하면 중앙대학교 신문학과 학생으로 편입시켰다. 둘째, 1969년 중앙대학교 법정대학에 신문방송연구소를 설립해 서울신문학원 졸업생은 중앙대학의 신문방송연구소 소장의 명의로 졸업증서를 발급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서울신문학원 졸업생이 중앙대학교 소장의 명의로 졸업증서를 받는다는 것은 서울신문학원 졸업생은 앞으로 중앙대학의 일원으로 동문이 된다는 뜻이다. 곽복산은 이에 관해 이런 말을 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중앙대학교 동문의 일원으로 영구히 남게 될 것이라고 했다. 곽복산은 그리고 신문방송연구소가 주관하는 전국의 고등학교 신문방송 지도교사 연구과정을 개설하기도 했다.

셋째, 곽복산은 1964년 중앙대학에 신문학 석사 과정을 최초로 개설했다. 이화대학도 같은 해, 중앙대학 보다 한 학기 늦게 신문학 석사과정을 개설했다 중앙대학에서 신문학 최초의 석사는 최진우(중대신문 편집국장)가 받았고 그 다음으로 이한석, 리대룡, 김종완 그리고 필자(이상철)등이 받았다.

필자는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논문도 이와 관련해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1969.11)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논문의 내용은 언론보도 과정에서 주로 문제가 되고있는 명예훼손(libel)과 프라이버시(privacy)를 다루었다.  넷째, 곽복산 교수의 언론학에 대한 구상과 언론학개론(편저, 1971)에 대한 저술이다. 1960년대 당시는 어느 누구도 언론이나 언론학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 신문에서 시작해 신문방송학이란 말 밖에 없었다. 방송도 라디오 방송이 주를 이루었고 1960년 대 초에 흑백 텔레비전이 부분적으로 보급되기 시작됐다. 필자가 동경올림픽 다음 해인 1965녀 2월 30명으로 구성된 전국대학신문편잡장의 일원(중앙대 영자신문 중앙헤럴드 편집국장)으로 일본 NHK를 방문했을 때 필자는 처음으로 그곳에서 칼라텔레비전 방송을 본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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