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교수의 건강과 행복 메시지
이상철교수의 건강과 행복 메시지
  • 양규완
  • 승인 2019.05.06 16:10
  • icon 조회수 28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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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나의 스승, 곽복산

 

 

 

 

 

 

 

◆ 곽복산, 한국 언론과 

    언론학의 개척자 (12)

2.나의 스승, 곽복산

곽복산 교수는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동아일보에 대한 애정이 남 달랐다. 그는 일장기말소 사건으로 동아일보가 무기정간을 당했다가 복간되자 자신이 낳은 5명의 자녀를 집안의 돌림 자가 아닌 동아일보의 동자를 돌림으로 해서 지은 것을 아주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다. 그리고 그는 만날 때 마다 동아일보 시절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일 같이만 곽복산 교수 같이 개성이 뚜렷하고 확실한 신념이 없이는 누구도 흉내낼 수 없었들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그는 작고하기 얼마 전 이런말을 할 정도로 동아일보에 대해 애정이 강했다.  

그리고 그는 “내가 세상을 뜨게 되면 동아일보는 나에 관한 기사를 사진과 함께 크게 다루어 줄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가 작고할 때 동아일보에서 크게 다루어 줄 것이라는 것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모른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그가 머지않아 세상을 떠날 수도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예감했는지 모른다. 

곽복산은 그후 알마 안 있다가 1971년 12월24일 한낮 중앙여고에서 강연 도중, 쓰러져 바로 세상을 하직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곽복산 교수가 한국서 최초로 언론인 양성을 위한 조서신문학원을 얼마나 중요시 했는지 알 수 있는 사건이었다. 중앙여고는 바로 곽복산 교수가 1947년 조선신문학원을 개설했을 때 교장인 황신덕의 배려로 1기생 수업을 한 곳이었다. 추운 날씨와 평소 앓던 혈압에도 불구하고 곽복산 교수는 황신덕 교장의 부탁을 받고 강연을 하던 도중 쓰려졌다. 그 자리에서 쓰러지자 종이 쪽지 한 장에 “한국신문학의 발생지는 바로 중앙여고의 한 교실이었다”고 적어 놓은 채 숨을 거두었다. 

나는 곽복산 교수가 숨을 거두던 날을 잊지 못한다. 이날은 크리스마스 전날이었다. 곽복산 교수는 그날 중앙여고로 강연을 하러 출근을 했고 그의 둘째 아들인 곽동성은 직장인 중앙대학교 비서실로 출근을 했다.

나도 곽동성과 같이 비서실에 같이 근무를 했기 때문에 이일을 잊지 못한다. 그날은 크리스마스 전날이고 해서 오전 만 일을 한 것으로 기억된다. 오후 쯤 되니까 동성이 아버지가 중앙여고에서 강연도중 졸도를 했는데 “동성”을 찾을 길이 없다는 전화가 여러 군데서 나의 집으로 걸려왔다. 당시는 지금 같이 핸드폰이 없었기 때문에 집에 전화를 연락을 하지 않으면 그가 어디가 있는지 알수가 없었던 때였다. 다음 날 아침 곽복산 교수댁으로 문상을 갔을 때 당시 곽 교수의 장남인 곽동일은 모대학 신경과 교수였든데 노화와 신경세포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 것으로 기억된다.  

곽복산 교수의 마지막 업적은 언론학개론(편저, 1971)이었다. 그러나 언론학 개론은 그가 급서한 다음 날인 12월25일에야 제본이 끝났기 때문에 저자 자신은 책 구경도 못한 채 눈을 감고 말은 아쉬움을 남겼다.                

3. 곽복산의 인격

 우리는 누구나 생을 마감하게 되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지만 오직 그가 남긴 인격(character)만이 영원히 남는다고 한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이 이성을 가지고 도덕법칙에 따르는 인간의 본질적인 성격을 인격이라고 했다. 도덕법칙에 의한 인격은 그 자체만으로도 찬란히 빛나는 절대적 가치에 속한다. 이 때문에 인격만이 존경을 받는 다고 한다.링컨은 45대 44명의 미국 대통령 가운데 언제나 가장 존경을 받는다. 한 예로 싱크탱크인 부루킹스 연구소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링컨이 단연 1위고,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이 2위, 3위는 루스벨트 그리고 오바마는 18위였다. 

 링컨은 전 세계를 통해서도 예수 다음으로 존경을 받는다고 한다. 러시아의 문호인 톨스토이도 링컨을 예수의 축소판(a Christ in miniature)이라고 했다. 링컨이 한 인간으로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존경을 받는 것은 그가 일관되게 도덕성을 중시해 이를 실천에 옮긴 가장 위대한 인격자였기 때문이다.. 

 링컨은 도덕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에 관해 이런 말을 했다. 만일 노예제도(slavery)가 도덕적으로 그르지 않다면 이 세상에 그른 것(wrong)은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링킨이 1858년 일리노이 주에서 공화당 상원후보로 선출됐을 때 그는 노예제도에 관해 이런 연설을 했다.

링컨은 성경구절(마가복음 3:25, if a house is divided against itself, that house can't stand)을 인용하면서 “미국이 앞으로도 노예주와 자유주로 나누어져 반목하게 되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더 이상 지탱될 수(stand)없다”고 했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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