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보 칼럼] 자연주의 철학자 헨리 소로와 월든 (2)
[현대일보 칼럼] 자연주의 철학자 헨리 소로와 월든 (2)
  • 이상철
  • 승인 2018.09.16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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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멘토르, 에머슨

헨리 소로 인생의 전환점은 그의 멘토르인 랄프 월도 에머슨을 만나면서 부터 였다. 에머슨은 헨리 소로와 같이 콩코드에서 출생했고 보스턴 라틴스쿨을 거쳐 역시 하버드 대학을 졸업했다.

수필가, 철학자, 시인 그리고 대중연설가(전국적으로 1,500회 연설)로 널리 알려졌다. 에머슨은 개인주의의 개척자였고 그가 추구한 실천적 초월주의는 헨리 소로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헨리 소로가 자신의 영혼(soul)을 통해 자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자 했던 것도 에머슨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헨리 소로가 자신의 영적인 자유(spiritual freedom)와 자신만의 의도적인 삶을 시험하고 추구하기 위해 월든 호수 가에 오두막을 지을 수 있었던 것도 에머슨 때문에 가능했다.

왜냐하면 에머슨은 헨리 소로가 자신의 식림 지(woodlot)인 월든 호수 가에 오두막을 짓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헨리 소로가 에머슨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837년 이었다. 에머슨은 1921년 하버드를 졸업했고 헨리 소로는 1837년 하버드를 졸업했다. 1837년 10월22일 에머슨은 처음 헨리 소로를 만나자 매일 일기(journal)를 쓸 것을 권 했다.

이에 헨리 소로드는 이때부터 1861년 11월3일 그의 건강이 아주 나빠 져 글을 쓸 수 없을 때 까지 일기를 썼다.

헨리 소로가 에머슨의 권고에 의해 평생 쓴 저널 일기의 양은 2백만 단어로 그가 사망한지 40년 후인 1906년 20권의 책으로 출간됐다.

에머슨은 1803년에 태어났고 헨리 소로는 1817년에 태어났으니까 에머슨이 14세 연상이다. 에머슨은 25년간 소로를 이웃으로, 작가로, 그리고 자신의 집 거주자(resident)로 알고 지냈다고 했다.

25년간이란 소로가 1837년 에머슨을 만날 떼부터 그가 45세(1817-1862)로 사망할 때 까지를 말한다. 에머슨은 79세(1803-1882)까지 살았다.

이는 소로의 생애에서 멘토르인 에머슨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로는 사설학교를 문 닫은 1841년 4월 자신의 평생  멘토르가 된 에머슨 집의 정원사 겸 잡역부로 이년 간 입주해 살았다. 그 후 1843년 여름 소로는 에머슨 형 자녀들의 가정교사로 뉴욕의 스태튼 아일랜드에서 칠 개월 이상을 지냈다.

이 칠 개월 은 소로가 자신의 고향인 콩코드를 떠나 산 가장 오랜 기간이었다. 소로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뉴욕이 1천배 이상이나 더 저속(meaner)했다고 하면서 뉴욕을 혐오했다.

소로는 스태튼 아일랜드에 머무는 동안 맨해튼을 일부러 피했다. 그 대신 콩코드의 겨울산책(a winter walk through Concord)이란 수필(essay)를 완성하는데 전념했다. 

스태튼 아일랜드의 가정교사직을 마치고 돌아온 후 소로는 앞으로 생계를 위해 가르치는 교사직을 접기로 했다. 그 대신 단순하고 겸허하게 사는 것으로 만족했다. 왜냐하면 자유란 인생의 복잡한 덫에서 벗어나 사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소로는 연필 만들기, 목공일, 석공, 원예 같은 얽매이지 않는 비상근 일(part-time jobs)을 하면서 보다 많은 시간을 자연에서 걷기(walks in nature), 독서 그리고 무엇보다 작가로 글을 쓰면서 보냈다. 

◇ 필자

이상철

중앙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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