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보 칼럼] 스승과 제자, 그리고 행복 (1)
[현대일보 칼럼] 스승과 제자, 그리고 행복 (1)
  • 이상철
  • 승인 2018.05.1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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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의 유래
나는 2008년 3월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현 미디어커뮤니케이션 학부)에서 27년간 교수로 재직하다가 은퇴 후 지금까지 명예교수로 있으면서 연구와 집필을 계속하고 있다.
은퇴 후 3개월 동안은 무엇을 하며 인생을 보낼까 하는 생각으로 밤에 잠을 설칠 때가 많았다. 나의  전공은 원래 미국 저널리즘 사(제1전공)와 국제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스피치커뮤니케이션(제2전공)이었다.
미국저널리즘 사를 연구하면서 내가 가장 감명 깊게 느낀 것이  제퍼슨의 독립선언문(1776)에 있는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권(pursuit of happiness) 사상 이었다. 여기서 행복의 추구권은 미국이 영국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원동력이 됐고 나아가 미국의 국가 적인 성격(national character)을 규정하는 영원한 칙령이 됐다. 그래서 제퍼슨의 비문에는 그가 미국의 대통령(3대)을 지냈다는 말은 없고 독립 선언문의 창시자란 말만 있다.
나는 대학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대학의 전공과 같은 일부에 국한되는 주제가 아니라 만인에 어필하고 관심이 있는 주제를 고심하던 끝에“행복”이란 주제가 만인에 해당된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를 위해 나는 은퇴 전의 전공인 미국언론사와 국제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으로부터  은퇴 후 전공을 행복에 관한 긍정심리학으로 바꾸기로 했다.
내가 긍정심리학을 알게 된 것은 행복에 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관련 서적을 읽고 연구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긍정심리학은 쉽게 말하면 행복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행복에 관한 연구는 원래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당시는 심리학의 영역이 아니라 철학의 영역에  속했다.
긍정심리학의 창시자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의 심리학 교수며 미국심리학회 회장인 마르틴 셀리그먼이다.
그는 1998년 미국심리학회에서 앞으로 심리학은 우울증과 정신질환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다루는 임상심리학을 넘어 긍정적인 감정 즉, 행복을 과학적으로 다루는 긍정심리학이 돼야 한다고 선언했다.
이결과 셀리그먼은 심리학의 연구대상을  환자로부터 전 인류로  확대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자신이 저술한“진정한 행복(Authentic Happiness, 2002)"이란 책에서 내가 지난 3년 간 대학에서 긍정심리학을 가르친 것이 그 이전 30년 이상 ”임상심리학“을 가르친 것보다 더 기쁘고 행복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긍정심리학은 행복과 같은 긍정적면을 다루었지만 임상심리학은 우울증과 같은 부정적인 면을 다루기 때문이다.
나는 은퇴 후 3개월 간 행복에 관한 긍정심리학을 연구하면서부터“행복의 메신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나는 2008년 7월부터 지금까지 (2018.4) 한 달에 한번 씩, 117개월 째“이상철의 행복 메시지”를 써서 제자와 친구 그리고 친지와 지인들에게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보내고 있다.
2. 제자와 대화 
나는 대학에서 은퇴를 한지 10년 째 되지만 아직도 제자들과 가까이 지내고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 행복하다. 이들은 추석이나 새해가 되면 잊지 않고 인사를 하고 이들과 전화로 대화를 나누곤 한다. 이들 가운데 박원준(공직)이 있다. 그는 내가 석사와 박사를 지도했고 내가 은퇴하는 날 까지 나의 연구실에서 나를 도와 일을 했다.  나는 박원준과 금년 신년을 맞아 전화로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박 군은 은퇴 후에도 5,6년간 서울에  있을 때는 한 달에 몇 번은 함께 식사를 할 정도로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 지방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직접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 그래서 나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만일 서울에 오는 기회가 있으면 밥은 내개 살 테니 꼭 만나자고 했다. 그때 박 군은 이런 말을 했다. 교수님, 교수님 집 근처의 그 식당이 아직도 있나요 라고 물었다. 물론 박 군을 만나 식사를 할 때는 그 식당을 자주 갔으나 그 후로는 가지 않았다.
그 식당은 우리 아파트(11층)에서 내려다보면 바로 보일 정도로 아주 가깝다. 박 군은 그 식당(황새골)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식당에서 먹고 대화를 나눈 것은 잊지 않고 있었다.  <다음주에 계속>

◇ 필자

이상철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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