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보 칼럼] 즐거움과 행복 (1)
[현대일보 칼럼] 즐거움과 행복 (1)
  • 이상철
  • 승인 2017.09.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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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움과 행복 (1)
1. 먹으면서 말하기
행복이란 누구에게나 매일 매일의 일상생활에서 얻어지는 작은 즐거움을 말한다. 칸트는 행복은 인생을 즐기는데 있다고 했다. 행복한 사람일수록 인생을 보다 즐기면서 산다. 행복을 위해서는 자신에게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것을 적극적으로 찾고 추구해야 한다.
일상생활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할 때는 먹고 말 할 때다. 사람들은 누구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눌 때 즐거움은 증폭되고 행복해 진다. 먹기와 말하기는 삶 그 자체이다.
살기위해 먹는가 아니면 먹기 위해 사는가 하는 논쟁은 마치 알이 먼저냐 병아리가 먼저냐 하는 것과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기위해 먹는다고 답한다. 인간은 위선적이며 표리부동한 동물이기 때문에 먹기 위해 산다고 하면 천박하고, 저속하고, 동물같이 느껴지기 때문   이다.
그러나 먹는 것을 참으로 즐길 수 있기 위해서는 솔직하게 먹기 위해 산다고 해야 한다. 살기위해 먹는다고 하면 마지못해 먹는 것 같고 먹는 것이 부차적이 돼 먹는 것을 진정으로 즐길 수 없게 된다.
먹는 것을 진정으로 즐길 수 없으면 무슨 일을 하든지 크게 성공하기 힘들고 삶의 의미도 무의미 해진다. 먹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만이 삶의 의미를 느껴 무슨 일을 하든지 크게 성공 할 수 있다.
같은 음식을 먹더라도 음식을 음미하면서 보다 천천히 먹으면 보다 즐길 수 있으며 보다 적게 먹게 된다.
한 예로 파리의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먹는 프랑스인은 뉴욕의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먹는 미국인보다 20분은 더 느리게 천천히 먹는다고 한다. 이로 인해 프랑스인은 미국인보다 음식을 덜 먹고 포만감을 덜 느껴 보다 즐겁고 행복하게 느낀다.   
그리고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먹기와 말하기는 동시적이며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이다.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발전하려면 “먹으면서 말 안하기 문화”가 아니라 “먹으면서 말하기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서양이 동양을 앞설 수 있었던 것도 서양이 먼저 먹으면서 말하기 문화를 정착시켰기 때문이다.
모든 위대한 사상은 식탁주변에서 나누는 대화에서 유래한다는 말이 있다. 이는 인류의 발전과 성장은 먹으면서 자유롭게 나누는 대화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세계최고의 부자인 빌 게이츠는 자신이 가장 행복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려서부터 먹으면서 자유롭게 질문을 격려하는 가정에서 태어 난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특히 가정에서 밥을 먹을 때 될 수 있는 한 말을 안 하거나 적게 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했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정에서부터“먹으면서 말 안하기 문화”가 아니라“먹으면서 말하기 문화”로 변해야 한다.
“먹으면서 말하기 문화”의 예를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현각스님에 대해서다. 그는 예일대학과 하버드 대학을 나오고 한국의 화계사 스님을 한 적이 있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먹으면서 말하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부모님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식사 만큼은 가족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기 때문에 우리 형제들은 매일 저녁 식사를 함께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크게는 베트남 전쟁, 워터게이트 사건 같은 국제, 정치적인 문제서부터 학교생활 이야기 까지 매일 평균 2시간 정도는 대화를 나눴다. 역사, 문화, 사회 등 우리식탁에 오르지 않는 이야기라곤 없었다.
둘째는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칼텍, Caltech)의 교수식당에 관한 이야기다. 이 대학 교수식당의 명칭은 아테네움(athenae
um, 그리스시대 학자들이 모인 곳)이다. 칼텍의 교수와 동문가운데 노벨상을 받은 사람은 33명(일본의 과학 분야 노벨상 총 수상자는 2017년 현재 22명, 한국은 제로 명)이나 된다.
이 교수식당에는 매주 정오가 되면 저명한 학자 겸교수 들이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원탁테이블에 모여 않는다. 이들 과학자들의 모임에는 네 명의 노벨상을 받은 교수 가운데 2,3명도 자리를 함께 한다.
이 교수 모임에는 역시 바이러스학으로 노벨상(1975)을 받은 발티모어 총장도 가끔씩 자리를 함께 한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참가자들 연령은 49세부터 90세까지 다양하다. 생물학 교수인 프레이저는 49세로 가장 젊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최근의 분자 물리학으로부터 아주 신선한 캠퍼스 가십에 이르기 까지 아주 다양하다(뉴욕타임스, 2004. 3월4일자).

◇ 필자

이상철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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