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보칼럼] 친절과 행복(3)
[현대일보칼럼] 친절과 행복(3)
  • 현대일보
  • 승인 2017.07.24 00:00
  • icon 조회수 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아파트 주민들을 만나는 기회는 대부분 엘리베이터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주민과 마주치면 애나 어른이나 남자나 여자나 무조건 안녕 하세요 라고 인사한다. 물론 나의 인사에 대해 반응을 하지 않는 주민도 더러 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는 애고 어른이고 남자고 여자고 다 내리게 한 다음 마지막에 내린다. 이런 작은 친절을 몇 년간 계속하다 보니까 이제는 거의 모든 주민과 인사를 하고 지낸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는 8명의 외국인 선교사들이 A층과 M층에 있는 2개의 아파트를 빌려 살고 있다. 이들 외국인 선교사들이 이곳에 사는 이유는 이들은 서울대학과 연세대에서 한국어를 배우는데 서울대는 마을버스 로 한 번에 갈수 있고 연세대도 거리가 좀 멀긴 하지만 일반버스를 한번만 타면 갈수 있다는 지리적인 편리함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들 가운데는 신부도 있고, 학생도 있고, 교수도 있다. 나는 이들을 만나면 반갑게 악수도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눈다. 대화는 영어와 한국말로 한다.
한번은 스페인 출신의 학생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어느 날 나는 그가 아주 옷도 깔끔하게 입고 환한 미소를 짓기에 무슨 좋은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그는 서울대학에서 한글을 배우는 학생인데 교수가 자기를 조교로 채용해 처음 출근하는 날이라고 하면서 흥분된 어조로 기뻐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조크도 했다. 나는 며칠 전 스페인에 있는 어머니와 통화를 했는데 어머니의 말이 내가 스페인어를 잘 못해 걱정을 하더라고 했다.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미국에서 7년을 살았는데도 영어에 별로 자신이 없었는데 이 친구는 아마 한국서 10년은 넘게 살았거니 하고 몇 년간 한국에 살았느냐고 물었다. 기대와는 달리 1년 반 밖에 안 된다고 능청을 떨었다. 아무튼 이들 외국인 신부와 교수 학생을 만나면 서로 웃고 악수하고 친근한 대화도 나눌 수 있어 기쁘고 행복하다.
내가 우리 아파트에서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는 E층의 신모, G층의 강모, 그리고 I층의 최모이다. 이들은 나보다 3,4살 젊지만 식사도 같이 하고 농담도 나눌 정도로 아주 친하게 지낸다. 가끔씩 일주일에 한번 쓰레기를 버릴 때 만나면 쓰레기 동우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J층의 정모와 내가 사는 K층의 건너편에 사는 김모는 나이가 나보다 8살에서 3살 정도 위지만 기회만 있으면 커피도 마시고 농담도 하며 재미있게 지낸다.
우리 아파트에서 가장 나이가 많고 활동을 하는 이는 H층에 사는 백모이다. 나는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그를 만났을 때 80대 초반 정도로 생각하고 나이를 물어보았더니 90세를 넘었다고 했다. 그런데 하루는 백모와 그보다 젊은 사람이 탔는데 부자간인 것을 몰랐다. 하지만 그 젊은이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들이 부자간인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아들에게 부친의 나이를 정확히 알기위해 나이를 물었더니 98세라고 했다.
나는 너무 놀랐다.
이 노신사는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버스를 타고 장충공원에서 산책을 하고 8시 경이면 집으로 돌아온다.
한번은 내가 볼일이 있어 집밖을 나섰을 때 이 노신사가 목이 마른지 길가에서 요구르트를 마시고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손을 잡았더니 나에게 요구르트까지 사 줬다.
이 외에도 J층에 사는 대학생, E층에 사는 최모 의사 등과도 비교적 가깝게 지낸다. 나는 나의 직업이 대학교수였기 때문에 대학생에 대해 관심이 많다. 하루는 그를 내가 좋아하는 스타박스로 초대해 커피를 마시면서 요즘 대학생들은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봤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요즘 대학생들은 공부를 하러 도서관을 찾기보다 자신이 좋아하고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커피전문점을 찾아 거기서 공부도 하고 사색도 한다고 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이제 한국도 커피문화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커피하우스는 17세기부터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면서 사색과 창작활동을 하던 곳이었다. 영국의 철학자인 존 로크를 위대하게 한곳도 커피하우스 때문이었다. 그는 커피하우스에서 동료들과 열띤 토론을 통해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본질적으로 선하며, 행복할 권리가 있고,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권리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천부적인 권리에 속한다고 했다.  아담 스미스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를 주창하는 부국 론을 쓴 곳도 커피하우스였다. 
조엔 롤링이 해리포터를 쓴 곳도 카페였다. 그녀는 집 근처의 니콜슨 카페를 찾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매일 두세 시간씩 진한 에스프레소 한잔과 물 한 컵만 앞에  두고 해리포터를 10년에 걸쳐(7편, 1997-2007)썼다.
해리포터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성경 다음으로 많은 4억 부 이상이 팔렸다. 

<다음주 계속>

이상철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명예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