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보칼럼]친절과 행복, 한국인의 친절(4)
[현대일보칼럼]친절과 행복, 한국인의 친절(4)
  • 현대일보
  • 승인 2017.07.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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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불친절의 체험 
망설이던 차에 S원장 생각이 났다. 그를 찾아 갔더니 있는 이를 보존하는 것이 좋다고 해 이를 뽑지 않고 치료를 해 주었다.
위이를 씌워서 치료를 받은 지 3년째 이지만 아직 별 탈이 없다. 최근에는 잇몸 치료를 받았는데 S원장의 친절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환자의 이를 치료 하고 있었다. 콧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즐긴다는 뜻이다. 의사도 기분이 좋아 좋고 환자도 안심이 돼 좋다.
카터는 백악관을 떠난 후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세상에는 세 가지 보이지 않는 차별이 있는데 첫째가 인종차별이고, 둘째가 성차별이고, 셋째가 노인에 대한 차별인데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못지않은 차별이 노인에 대한 차별이라고 했다.
나도 대학에서 은퇴를 한지가 2018년이면 10년이 되니까 노인에 대한 차별을 느낄 때가 됐다. 내가 잊지 못할 노인에 대한 차별과 불친절을 체험한 것은 지난 해 겨울이었다. 몸통의 옆구리에 작은 물집이 생겨 동네 피부과를 찾았다.
손님은 아무도 없었고 프런트 데스크에 간호사 2명이 앉아 잡담을 하고 있었다. 이름과 생년월일 등 인적사항을 적으라고 해 적어 줬다.
곧 들어 오라가 해 의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앉으라는 말도 없이 무표정하게 처다 보기만 했다. 어디가 아파서 왔느냐고 묻지도 않고 처다 보기만 해 몸통에 난 물집을 보여 주면서 여기가 아프고 근질거린다고 했다. 그런데 무엇이 기분이 나빴는지 내가 아프다고 한 부위를 보는 척 마는 척하고,  불쾌하게 하는 소리가 “등록했어요, 나가세요” 라고 했다.
나는 간호사에게 인적사항을 적어 주었다고 했고 왜 이렇게 불친절하냐고 했다. 그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의사는 원래 그런 거요. 불친절하기는 무엇이 불친절 해요. 내가 욕을 했어요 반말을 했어요 하면서 항의조로 말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나는 허겁지겁 이 병원을 빠져 나왔다. 또 다른 불친절과 무관심은 얼마 전 대학캠퍼스 내에서 였다.
나는 미국서 온 윤대기라는 친구와 옛 캠퍼스를 찾았다. 우리 둘은 1960년대 초부터 아는 사이였다. 그는 1964년 동경올림픽 레슬링 부문에 참가한 한국 대표선수였다. 그는 1968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클리블랜드에 정착했다. 그는 미국의 여러 주에 유통망을 갖고 있는 물류유통 업 회장직을 맏고 있다. 그가 모교인 대학캠퍼스를 찾은 이유는 후학들이 자신과 관련하는 클리블랜드 주립대학에 장학금을 받도록 돕기 위한 것이었다.
캠퍼스본관 근처에 도착해 대학원장을 만나기 위해 대학원 건물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그는 대학원 건물로 가는 길을 묻기 위해 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여학생을 향해 학생, 학생하면서 여러 번을 불렀다. 그렇게 큰 소리로 여러 번을 불렀는데도 이쪽은 본 척도 않고 고개만 수그리고 그냥 지나가 버렸다.
나는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현장에는 우리 둘과 그 여학생 만 있었고 그렇게 큰 소리로 여러 번을 불렀는데 그냥 무심코 지나칠 수 있을까? 저 여학생은 왜 살며 무엇을 위해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현재 이 순간이 중요하고 지금 만나는 사람이 중요하다. 삶이란 만남이 중요하고 대화가 중요하고 친절과 미소가 중요한데 이 여학생은 왜 사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길을 모르는 사람에게 길을 안내해주고, 미소로 답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친절이다. 이런 작은 친절이라도 친절을 베풀면 상대방도 행복해지고 나 자신도 행복해 진다. 

 <다음주 계속>

이상철
중앙대 신문방송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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