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보칼럼] 중국의 근대사 콤플렉스
[현대일보칼럼] 중국의 근대사 콤플렉스
  • 신경환
  • 승인 2014.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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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유구한 역사에서 최근 백 년은 그 어느 때 보다 잊고 싶은 시기가 될 것이다. 중국은 그 국명에서처럼 농업생산량이 많은 중원지역을 중심으로 문화와 경제가 발전된 국가이다. 역사적으로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수 많은 세력들이 패권을 경쟁하며 중국을 통치해 왔다.
따라서 중국은 분열되었다가 다시 통일되고 통일되었다가도 다시 분열을 반복해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역사는 어디까지나 중국 내부의 역사이다. 중국은 대외적으로는 여전히 중화사상을 기반으로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러한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보다 이론화 시킨 것이 바로 화이론으로 표현되는 중화우월주의이다. 중국을 뜻하는‘화’와 한반도를 의미하는‘이’를 대비시켜 중국이 주변국 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다소 엉뚱한 시도를 하게 된다. 명나라시기 중국은‘정화’라는 외교관을 중국이 아직 확인하지 못한 세계로 보내 외부에 중국을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이 있는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당시 이러한 규모의 원정은 엄청난 비용뿐만 아니라 그 시도 자체가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당시 정화는 인도와 스리랑카를 넘어 아프리카 동부해안까지 중국의 시각을 넓히게 된다.
정화의 원정은 6차까지 이어졌는데 일부 역사가들은 엄청난 비용이 소비되는 해외원정이 결국 영락제의 허영심 때문에 비롯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순히 허영심 만으로 반복적인 원정을 보내는 것은 당시의 정치상황으로도 타당성을 찾기 힘들 것이다.
분명 중국은 정화의 원정을 통해 다시 한번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고 중국이 알 수 있는 세계 안에 중국보다 문명이 발전되고 중국을 위협할 수 있는 세력이 없다는 것을 확인 하고자 했다. 또한 이는 정치적으로도 황제의 권력을 다시금 강화시켜 줄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결국 영락제로서는 충분히 원정의 비용을 감당할 이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가진 이러한 자만심은 불과 몇 십년 동안 이어진 서구열강의 침략으로 무참히 무너지고 만다.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서구열강의 침탈에 중국은 매우 무기력하게 유린당하고 말았다. 더욱이 중국이 오랜 기간 자신들 보다 열등하다고 인식한 오랑케의 하나인 일본에 의해 유린당한 근대사는 중국이 빨리 잊고 싶은 역사이다. 19세기 말 중국을 침탈한 세력의 기반은 신식 무기와 발전된 군사전략을 통한 침략이었다. 당시 중국의 젊은이들은 이러한 발전된 기술에 매료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현대적 변화를 거부한 청나라 조정에 더 큰 반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중국의 엘리트들의 인식이 당시로서는 가장 발달된 시스템으로 인식된 사회주의제도에 빠르게 동조한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일본을 이기는 것이야말로 중국이 과거 백년 동안 가슴에 품고 있던 한을 풀어내는 것과 같을 것이다. 특히 군사적인 측면에서 일본을 압도할 수 있다는 사실에 중국인들의 자존감을 크게 고취시킬 것이다.

 

◇ 필자

 

신경환

국제정치학 박사, 신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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