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일보칼럼] 중일 감정 대립 격화
[현대일보칼럼] 중일 감정 대립 격화
  • 신경환
  • 승인 2014.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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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과 일본의 감정적 대립은 국제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중국은 독일 메르켈총리의 방중을 계기로 또 한번 일본에 대한 비난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전범국가로서 일본은 종종 독일과 비교된다. 독일은 2차 대전 직후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철저한 사과를 하고 유럽사회로 복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은 전쟁에서는 패했지만 그렇다고 동아시아사회로 복귀할 필요성이 없었다. 일본은 여전히 아시아에서 가장 발달한 나라였고 전후 일본을 점령한 미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느냐가 일본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었다.
전쟁을 주도했던 독일의 히틀러는 스스로 자살하면서 독일의 전쟁범죄에 대한 원죄를 상당부분 한 개인으로서 떠 안고 사라졌다.
그러나 미국은 전후 일본의 원활한 통치를 위해 도쿄국제재판에서 일본인 전범들을 대부분 사면했다.
특히 상징적인 위치에 있었던 일왕에 대해 아무런 처벌을 하지 않아 사실상 일본은 전쟁범죄는 있지만 책임은 없는 특수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중국은 당시 도쿄국제재판이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되자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강력한 항의를 했지만 결과에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중국과 한국은 2차 대전에서 매우 취약한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연합군의 일원으로서 인정받지 못한 것이다. 유럽에서는 광복절이라는 것이 없다. 하지만 전승기념일은 있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2차 대전에서 전승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스스로 독립을 쟁취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승리에 따라 일본이 물러간 것으로 인식해 왔다.
중국은 공식적으로는 항일전쟁의 승리로 표현하고 있지만 2차 대전 직후 시작된 국공내전에서 기적 같은 대장정을 통한 승리와 그에 따른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이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승리의 주된 대상은 일본보다는 국민당이 부각되었다.
중국은 일본과의 과거사 쟁점에서 갑자기 중국 주둔 일본군이 팔로군에게 항복하는 모습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흥미롭게도 이 모습은 오랜 기간 보존되어 왔을 뿐 대중에 공개되지 않았다. 당시 일본의 항복을 받은 주체가 공산당이 아니었다는 점에 정치적인 부담감을 느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대만 국민당과의 체제경쟁은 의미가 없다. 중국은 국제적인 금기로 여겨졌던 일본의 원자폭탄 투하를 묘사하는 지도를 인터넷에 올려 일본의 강력한 항의에 놓였다.
그 동안 일본은 유일하게 원자폭탄으로 공격받은 국가라는 것을 강조하며 오히려 자신들이 2차 대전의 피해자라는 이미지를 세계에 확대시키려 노력해 왔다. 사실상 이러한 일본의 노력은 상당한 효과를 거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며 그들의 진심을 의심하게 하고 있다. 일본은 피폭피해자의 끔찍한 모습을 잘 편집하여 보여주며 세계여론을 움직이고 있다.
`물론 그러한 피폭자들 중 상당수는 노예로 일본에 끌려가 고된 노동에 시달리다가 피폭 당한 조선인 징용자에 대한 설명은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일본은 국제사회에서 핵을 반대하는 대표적인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일본은 다량의 플루토늄을 생산하고 보유하고 있으며 언제든 대량의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설비와 기술을 개발해 놓고 있다.
특히 일본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꾸준히 일본의 플루토늄 생산을 용인해 줄 것을 요구했고 이 또한 일본의 대미 외교의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이러한 일본의 이중적 태도와 잘못된 전후인식을 이슈화 하여 일본의 잘못이 핵무기의 재앙을 초래했다는 주장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 필자

 

신경환

국제정치학 박사, 신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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