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국인>중국의 ‘음료수대왕’, 와하하그룹의 쫑칭허우(宗慶後)
<중국, 중국인>중국의 ‘음료수대왕’, 와하하그룹의 쫑칭허우(宗慶後)
  • 한인희
  • 승인 2011.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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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혹한 국제 비지니스 사업 속 진보적 발전

쫑칭허우의 경영 이념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그는 매우 실질적이다. 그는 사업 분야에서 고집이 세고 확신을 갖고 있다. 자신의 이러한 경험과 규칙 때문에 이른바 주류기업들이 구사하는 현대화된 기업 이론을 거들 떠 보지도 않는다. 기자가 “와하하는 어떤 전략을 구사합니까?”라고 물었다. 쫑칭허우는 “와하하는 전략이 없어요. 저는 8, 9년 이후의 일을 절대로 고려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내일에 있을 일만을 고려할 뿐입니다”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쫑칭허우는 매년 2/3의 시간을 시장과 현장으로 뛰어다닌다. 2002년 8월 새로 건설할 공장 부지를 찾기 위해 쫑칭허우는 12일 동안 전 중국의 절반이나 되는 지역을 쫓아다녔다. 그는 지금까지도 골프를 포함해서 절대로 한가롭게 운동을 하면서 보내지 않는다. 쫑치허우가 보기에 이러한 일들은 “별로 가치도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영업 이익만이 기업가의 천직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기업가란 브랜드를 만들고 마케팅을 계획하고“이익을 보는” 전제하에서 이뤄진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광고도 ‘실제적인 광고’에 주력한다. 따라서 광고 용어에는 문화적 품위나 예술성이 전혀 없다. 오로지 군중들을 선동하고 그것이 직접 매출액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전략을 사용할 뿐이다. 그러므로 와하하의 경영진도 때로는 지속적으로 실무적이고 신선한 혈액을 공급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다른 기업처럼 해외에서 막 귀국한 인재를 낙하산으로 임명하거나 강력하게 조직 개혁을 추구하지 않는다. 더욱이 자신들의 브랜드 제고를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지도 않는다. 모든 것이 실질적인 것에 초점이 맞추어 있다.
두 번째는 마케팅에서의 독특한 네트워크다. 그는 공동 마켓팅 모델을 창립했다. 그리하여 3,000개에 달하는 1급 판매상, 그리고 3만-4만개에 달하는  2급 판매상과 와하하 그룹을 연결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은 극도의‘폐쇄성 마케팅’ 구조다. (즉 판매상 끼리 구획을 정해놓고 판매를 하며, 상호간에 절대로 지역을 침범해서는 안 되며 위반자는 엄격한 처벌을 당하거나 판매상의 자격을 취소한다) 이로써 판매망은 매우 안정적으로 자신들만의 가격체계를 유지할 수 있다. 거기에 더하여 쫑칭허우는 자본과 판매액간의 엄격한 통제를 가한다. 자신들의 모든 판매상이 돈을 벌도록 보장을 해준다. 따라서 충성스런 판매상과 와하하 그룹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매년 수 억원의 음료 판촉과 배송은 모두가 하나의 시장을 중심으로 완성된다. 이러한 방식은 일종의 높은 효율을 집중시켜 시장을 관리하는 모델인 셈이다. 만일 연결고리가 끊어지면 전체 판이 붕괴될 위험도 갖고 있다. 따라서 판매상의 관리는 비교적 엄격하게 관리된다. 그 내용을 보면 하나는 시종일관 보증금제도를 취하고 있다. 즉 먼저 돈을 받고 물건을 주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그 다음으로 판매상이 전심을 다해 와하하를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요구한다. 따라서 절대로 다른 브랜드를 판매할 수 없도록 강요한다. 마지막으로 이를 위반할 경우 엄격하게 제재를 가한다.
셋째는 다원화이다. 2003년 말 쫑칭허우는 “만약 와하하가 업계에서 선두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원화의 전략을 진지하게 유지해야만하다”고 주장했다. 일찍이 2002년 5월 와하하는 다원화의 첫발을 내딛었다. 다시 말해서 타업종에 진출이었다. 그것은 아동복이었다. 원래 계획은 년간 판매 목표액은 10억 위안이었다. 만약 이 전략이 달성되면 곧 평상복, 남성복, 여성복 영역에까지 진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2003년 와하하의 아동복은 겨우 1억 7천 3백반 위안의 매출에 순이익은 2000만 위안에 불과했다. 그는 의류사업에 실패하자 생활용품에 눈을 돌렸다. 와하하는 ‘샴푸, 목욕액과 피부보호 크림 같은’ 상품이었다. 당시 쫑칭허우는 생활용품에 관심을 둔지가 이미 2, 3년이 됐었다. 그는 생활용품 분야는 비록 경쟁이 치열하지만 “외국의 대형 브랜드는 이미 정상에 도달했기 때문에 지금이 바로 국내 기업이 반격을 할 시점이다”라고 파악했다. 다시 말해서 쫑칭허우의 눈에는 이미 이 업종은 성숙된 시장이지만 진입하는데 가치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가장 좋은 진입방식은 바로 과거의 게임 규칙을 바꾸어야만 가능하다고 판단하였고 그렇게 추진했다.
네 번째, 권한을 집중시키는 일이었다. 쫑칭허우는 자신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인물을 마오쩌둥이라고 주장했다. 쫑칭허우는 “당신이 가서 보라. 현재 중국에서 성공한 대기업을 보라! 모두가 강력한 리더쉽을 갖고 있고 모두가 대권을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다. 그리고 독재적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의 일대기를 집필한 <상전의 오뚜기-쫑칭허우(商戰不倒翁——宗慶後)>의 표지에 중국의 현 단계 좋은 기업을 하려면 당신은 반드시 독재적이지만 개명되어야한다고 썼다” 그는 매우 독재적이다. 따라서 와하하 그룹은 현재까지 부총경리라는 직책이 없고, 생산담당, 판매담당 등 각 영역의 관리는 바로 각 부서의 부장이 담당하고 있다. 기업내부에 전해지는 소문은 “쫑칭허우의 싸인을 쓸어버리는 빗자루를 하나 사야만 한다”라고 투덜거렸다. 쫑칭허우의 책상 위에는 컴퓨터가 없다. 오늘날까지 그는 ‘주비(朱批:황제의 결제)의 방식으로 명령을 하달하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때는 직접 매월 판매 통보를 직접 작성하기도 하고 아울러 시장을 시찰할 때는 전화로 직원들에게 신속하게 행동하도록 지시한다. 어떤 사람이 그의 밑에 있는 경리의 보고서를 보니 시작하는 첫 마다기 “당신의 지시에 근거하여...”라고 쓰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경영방법은 황제식 경영이다.
다섯째, 민영사업으로의 변신을 꽤했다. 쫑칭허우는 “2000년 이전에 와하하그룹은 100% 국유기업이었다. 그러나 국가는 사실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었다”고 주장했다. 2000년의 중국의 기업제도를 개혁하는 중에 쫑칭허우와 직공들은 정부로부터 와하하 그룹의 55%의 주식을 구매했다. 와하하는 ‘전직원주식보유’를 실현했다. 그 가운데 쫑칭허우의 주식은 30%를 보유하였다. 그 밖의 와하하그룹의 고위 관리층이 5%, 직공이 20%를 보유했다. 그러나 46%의 주식은 항저우시 상청취(上城区) 국유자산관리유한공사가 보유하게 됐다. 그러나 언론 매체들의 폭로에 따르면 국가가 와하하그룹을 주식으로 통제했지만 쫑칭허우와 그 가족은 주식으로 ‘가족기업’을 건립했다. 여러 지분을 가지고 있는 와하하는 주식을 상호 소유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됐다. 현재 와하하그룹은 40여개 기업으로 비합자회사가 됐다. 그 배후에는 이미 10여개 회사는 직접 투자했고 비합자회사도 26개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비합자회사도 거액의 이윤을 가져다주고 있다. 쫑칭허우에 대해 전해오는 이야기는 많다.
경제부 기자들은 습관적으로 그를 ‘패왕’이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는 마오쩌둥을 숭배하고 그의 군사전략 사상과 사람을 다루는 이론을 기업 관리에 적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150여개 이상의 지점과 3만 명 이상의 직공을 보유한 대기업이지만 오늘날까지도 오로지 한명의 회장과 한명의 총경리인 그가 이 기업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항저우의 본사 건물에는 거대한 쫑칭허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51%의 지분을 갖고 있는 프랑스 음료수기업인 다논(danone:중국명 达   能)과의 11년간 합작을 하면서도 여전히 물한방울 들어가지 못할 정도의 배타적인 그의 ‘쫑씨왕국’을 확립하고 있다. 프랑스 다논과 갈라설 때도 철면피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이 문제로 인하여 중국과 프랑스의 외교문제로 비화되었고 후진타오와 싸르코지간의 이 문제를 논의할 정도였다. 이 사건으로 중국상무부가 전면에 나서 중재를 했고 국제여론도 프랑스 편이었으나 2년간의 갈등이 지난 뒤 결국 그가 이겼다. 이 과정에서 일련의 비즈니스 스캔들이 폭로됐다. 사적인 추문, 음성적인 계약, 탈세, 해외 거류증인 그린카드 소유 등이 그것이다. 그는 그동안의 민족주의자로  그의 부를 축적하는 과정 등의 근면함이나 실업가적인 이미지에 커다란 상처를 입혔지만 개이치 않았다.
2008년을 기준으로 와하하의 영업총액은 250억 위안을 넘어섰고 이윤이 50.53억위안에 달하여 동기대비 50.36%의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기업 와하하는 여전히 중국의 음료수 업계의 1위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엄혹한 국제 비즈니스 사회에서 보다 진보적인 발전을 하지 않는다면 와하하 그룹의 미래도 밝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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