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국인>‘오빠부대를 끌고 다니는 꽃미남 피아니스트’, 랑랑
<중국, 중국인>‘오빠부대를 끌고 다니는 꽃미남 피아니스트’, 랑랑
  • 한인희
  • 승인 2011.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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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새 아이콘 랑랑 진화 끝은 어딘가?

2007년 8월 8일 텐안먼 광장에서 1년을 남긴 베이징올림픽 경축행사가 거행되었다. 랑랑(郎郎)은 이 공연에서 격정적으로 이른바 ‘중화민족의 정신을 반영한’ <황허피아노협주곡>을 연주하였다. 또한 이 해가 마무리되던 시점에 랑랑은 기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것은 모든 음악인들의 꿈인 그래미상의 최고연주가상(Best Instrumental Soloist)에 노미네이트되었는데 이는 중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일이었다. 해가 바뀌어 2008년 2월 그는 ‘미국녹음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예술영예상’을 수상하였고 그래미상 수상식에서 6분간의 연주를 했다. 이는 근래에 고전음악가로서는 처음으로 그래미상 무대에 오른 일로 주목을 받았다. 랑랑은 다시 한번 ‘중국의 명함’이 되었다. 1월에는 랑랑의 최근 디스크인 <매력랑랑>이 북미지역에 발매되기 시작하였다. 시장에서는 고전음악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2007년 12월 31일과 2008년 1월 1일의 랑랑은 중국국가대희극원에서 세계적인 명지휘자 오자와 세이지와 신년음악회를 두 차례 가졌다. 이 공연의 티켓은 발매 15분 만에 매진되었다. 한편 2007년 홍콩의 봉황TV가 제작한 <랑랑의 노래-2008년에 바치다>라는 음악 다큐멘터리가 중국의 명승고적을 배경으로 제작되었다. 베이징의 고궁, 천단, 옛관상대, 장성, 황허의 폭포, 태행산의 협곡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으며 2008년 전 중국의 극장에서 방영되었다. 2008년 2월 실물 크기인 유명인들의 밀랍인형을 100여 개 이상 보유하고 있는 홍콩의 ‘마담튀소밀랍인형박물관(Madame Tussauds)’에서는 랑랑의 밀랍인형을 제작하였다. 그 이유는 여행객들에게 “당신이 가장 만나고 싶은 중국인은 누구인가”라고 질문했을 때 최고 득표를 한 유명인은 바로 랑랑이었기 때문이었다. 2008년 3월 랑랑은 미국의 케네디센터에서 연주회를 가졌고 2900석의 좌석은 완전 매진되었다. 2008년 5월 랑랑은 <베토벤>전집으로 ‘에디슨음악대상’ 고전류협주곡대상을 수상하였다. 2008년 6월 미국의 저명한 출판사인 랜덤출판사에서 그의 전기를 출판하였다. 미국의 저명한 베스트작가인 데이비드 리츠(David Ritz)가 쓴 <천리의 여행:나의 이야기(Journey of a Thousand Miles: My Story)였다. 이 책은 중국어로 <千里之行>이라고 했는데 노자(老子)의 “천리나 되는 먼 여정도 내딛는 첫발에서부터 시작한다(千里之行,始于足下)”에서 취한 것이었다. 그만큼 랑랑은 이제 시작이라는 의미와 ‘위대한 일도 눈앞의 작은 일에서부터 비롯된다’는 말로 겸손함을 동시에 보여주었다. 이 전기는 12개 언어로 전 세계에서 발매되었다. 그는 2008년 6월 30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개최된 유럽축구선수권대회(UEFA European Championship) 결승전에 세계적인 비엔나필하모니와 <소팽피아노협주곡 1악장>을 연주하였다. 2008년 독일국영TV는 공식적으로 세계적인 피아니스인 랑랑을 이 방송국의 문화대사로 임명하기도 하였다. 2008년 8월 8일 베이징 올림픽이 개막되었다. 그는 개막식에서 <찬란한 별빛 하늘(燦爛星空)>이라는 곡을 장장 8분간 연주하였다.
당시 베이징 올림픽에서 보여준 랑랑의 의미를 중앙일보 김호정 기자가 쓴 <스타피아니스트 랑랑>이라는 기사를 참고해보자. “‘랑랑 바람’이 분다. 베이징 올림픽은 중국이 랑랑을 세계인에게 소개하는 자리인 셈이다. 이 때문에 올림픽 이후 클래식 음악계에는 한동안 ‘랑랑 바람’이 불 전망이다. 아디다스는 최근 ‘랑랑 스니커즈’를 내놨다. 검은색 바탕에 피아노 페달 모양의 금색 줄을 새기고, 랑랑 특유의 과장된 피아노 연주 자세를 그려넣은 한정판이다. 클래식 연주자로서는 드문 일이다. 이 때문에 랑랑은 카라얀 이후 팝스타와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클래식 아티스트로 꼽히고 있다.” 이어서 “중국 문화성장의 아이콘으로 1982년생인 랑랑은 문화혁명 이후의 1세대에 해당한다. 억눌렸던 문화적 욕구가 한 가정 한 명의 아이에게 쏟아지던 때다. 이 때문에 랑랑의 성공은 중국 문화 성장의 역사를 상징한다. 랑랑은 그동안 중국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확실하게 표현해왔다. 뉴욕 카네기홀에서 중국의 전통 의상을 입고 자국의 음악을 앙코르로 연주했다. 쓰촨(四川)성 지진 피해자를 위해 자신의 피아노를 경매에 부치기도 했다. 랑랑이 쓰는 빨간색 그랜드 피아노의 경매는 16만 5000달러(약 1억6000만원)에서 시작, 올림픽 개막일인 8일 오후 5시를 마감으로 현재 진행 중이다. 화끈하고 폭발적인 해석이 그의 특징이다. 귀에 쉽게 들어오는 그의 음악에서 스타성을 발견하고 아우디·소니·몽블랑 등 대기업이 홍보대사 역할을 맡겼다. 올림픽 스타로 기록될 랑랑은 폐막 이후 런던에서 독주회를 열고 9월 한국에 온다. 9일 성남아트센터, 10일 예술의전당에서 지휘자 정명훈, 라스칼라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이처럼 랑랑은 중국의 국가적 브랜드가 되었다. 이후에도 그는 계속하여 세계적인 공연에 참가하였다. 2009년 6월 30일에는 <2009년 매력중국연주회>에 참가하였고, 이 해 9월 9일에는 루이스 데이비스 심포니홀(Louise M. Davies Symphony Hall)에서 공연을 가졌다.
2009년 10월 1일에는 중화민국건국 60주년 수도 각계 국경절 연회에 참가하였다. 2010년 6월 2일 저녁(미국시간)에 백악관에서 오바마대통령을 위한 공연을 가졌다. 금년 1월 19일 랑랑은 다시 한번 백안관에 초대되었다. 후진타오 중국국가주석의 미국 국빈방문 만찬이 열렸다. 랑랑은 프랑스 작곡가 라울 라파라(Raoul Laparra, 1876~1943)의 <마망우와모음곡>과 중국곡 <나의 조국(我的祖国)>을 연주하였다. 랑랑이 <나의 조국>을 연주하게 된 것은 사실상 외교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그것은 한국전쟁에서 미군과 싸웠던 인민해방군의 이야기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랑랑은 이 곡을 선택하게 된 것을 “내가 생각하기에 백악관같은 국빈만찬에서 연주하는 곡은 중국인들이 매우 자부심을 느끼는 심정을 표현한 곡 중에서 골랐고 틀별히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 밖에도 이 곡을 내가 너무도 좋아한다. 매번 연주 때마다 나의 마음을 움직인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경향신문> 2011년 10월 19일의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라는 글을 참조해보자. “‘승냥이와 이리가 침략해오면(若是那豺狼來了),엽총으로 맞이할 것이네(迎接的有獵槍).’ 지난 1월19일 백악관. 미국을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 주석을 위한 국빈 만찬이 열렸다. 중국의 천재 피아니스트 랑랑(郞朗·28)의 손끝에서 웅장한 서사시가 연주됐다.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하지만 이 곡의 정체를 알았다면…. 만찬장 분위기는 싸늘했을 것이다. 1956년 중국에서 개봉된 영화 <상감령(上甘嶺)>의 주제가(‘나의 조국·我的祖國’)였으니 말이다. 상감령은 강원 철원의 오성산(해발 1062m) 동북방에 이어진 고지군(群)을 일컫는 지명이다. 영화 <상감령>은 59년 전 이맘때인 1952년 10월14일부터 42일간의 싸움에서 중국군이 거둔 승리를 그린 영화이다. ‘나의 조국’ 가사의 ‘승냥이와 이리(豺狼)’는 ‘미군’을 지칭하는 것이다. 그런데 랑랑이 ‘미제’의 심장부인 백악관에서 이 곡을 연주한 것이다. 중국인들은 ‘표정관리’에 나섰다. ‘랑랑이 피아노 외교로 미국을 한방 먹였대’라고 속삭이면서…. 중국은 ‘상감령 전투’를 ‘지원군이 조선전쟁에서 거둔 최대의 승리’라고 선전한다. 항일투쟁과 국공내전을 막 끝낸 신생국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승전보였다.” 이에 대한 논쟁에 대해 어느 중국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음악은 우월한 언어의 표현 능력에 있고 그것은 언어의 장벽을 뛰어넘는 매력을 갖고 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음악은 공간적으로 이해와 융합을 자유롭게하는 새로운 활력이다. 유명한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는 여러 차례 ‘음악은 국경이 없는 언어’라고 주장하였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부드러운 ‘키타구니노하루(北国之春)’는 군국주의 가장 농후한 시기의 사람들에게 불려졌지만 중국인들이 좋아하고, 미국인들은 독립전쟁시기에 영국인들이 미국인을 조롱한 ‘양키’를 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되었고, 중국 노래 ‘예라이샹(夜來香)’도 중국 침략 일본군들이 불렸던 것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음악인 정치적인 해석을 넘어서는 매력이다”라고 강변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랑랑은 새로운 중국 부상의 아이콘이자, 중국의 자부심이다. 그의 진화가 어디까지일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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