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중국인> 오빠부대를 끌고 다니는 꽃미남 피아니스트’, 랑랑
<중국, 중국인> 오빠부대를 끌고 다니는 꽃미남 피아니스트’, 랑랑
  • 한인희
  • 승인 2011.10.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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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젊은 피아니스트 세계를 격동시키다

랑랑(郎朗)은 국제적으로 저명한 중국의 젊은 피아니스트이다. 미국의 권위 있는 언론 매체들은 그를 ‘현존하는 이 시대의 최고의 천재이자 가장 빛나는 우상’이라고 칭송하고 있다. 미국의 <피플>지는 그를 ‘세계를 변화시킬 20명의 청년’에 선정하기도 하였다. <뉴욕타임지>는 랑랑을 ‘고전 음악계에 가장 젊은 피아니스트 대가’라고 평가하였고, 독일의 <디벨트(Die Welt)>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피아니스트’라고 주장하였다. 많은 세계적인 언론 매체들이 그를 ‘부상하는 중국의 아이콘’이자 ‘세계적인 인물인 랑랑은 중국인의 자랑’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는 비엔나 필, 베를린 필, 미국의 5대 교향악단 등 세계적인 일류 교향악단들과 장기적인 협연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모든 저명한 음악 홀에서 개인 독주회를 개최한 유일한 중국인 피아니스트다. 그는 최초로 미국 백악관에 초청되어 독주회를 연 중국 피아니스트였다. 이 자리에서 전 미국 부시대통령으로부터 ‘세계평화의 사절’이라는 칭찬을 들었으며 그는 최초로 영국 황실의 직접 초청으로 이미 고인이 된 영국 여왕을 위한 음악회에 참가하였고 특별히 직접 창작한 ‘영국여왕에게 헌정’하는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하다. 그는 중국의 국가적인 주요행사에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가 특별히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서 8분간에 걸친 단독 연주를 하였으며 당시 연주한 <별빛(星光)>은 전세계 42억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기도 하였다. 그것뿐만 아니라 베이징 올림픽 1주년 전인 텐안먼 광장의 축하 기념식에서 랑랑은 <황허(黃河)>를 연주하였다. 2007년 홍콩 반환 10주년 기념연회에서 압권적인 공연은 후진타오 국가 주석로부터 격려를 받기도 하였다. 이후 그는 중국의 주요 국가적인 행사에는 반드시 등장하였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 개막식, 광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등에는 단골손님이다. 그 밖에도 그는 2008년 노벨상 수상 기념 음악회, 2008년 미국의 그래미상 수상식, 2006년 월드컵 개막축하음악회 등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행사에 초청되었다.
그의 나이 겨우 28살에 불과하지만 그는 이미 우크라이나 출신 미국의 피아니스트 블라드미르 호로비츠(Vladimir Horowitz, 1903.10.1~1989.11.5)와 러시아의 세계적인 작곡자이자 피아니스트인 루빈스타인(Rubinstein Anton Grigoryevich, 1829~1894)을 이을 피아노계의 차세대 리더가운데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랑랑의 음악적 재능과 자유분방한 성격은 고전 음악계의 가장 이상적인 해석자이자 젊은이들의 마음속의 우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위대한 중국인 음악가로 그는 세계를 향해 중국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일류의 젊은 음악인으로 평가한다.
그는 1982년 6월 14일 중국의 동북지방 썬양(沈陽)의 만주족 후손의 집안에서 태어났다. 3살이 되던 1985년, 그는 아버지 랑궤렌(郎國任)으로부터 처음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하였다. 그의 아버지와 음악과의 인연을 소개해보자. 랑궈렌의 고향은 지린성의 뚱펑시엔(東豊縣) 량무린즈(楊木林子)로 조부가 일찍이 이곳에 학교를 세우는 등 명망이 높았던 집안이었다. 그러나 뒤에 그들은 썬양으로 이주하였다. 랑궤렌은 아버지의 영향으로 예술을 무척 좋아했다. 그는 어릴 때 피리를 배워 불었다. 그는 중국 전통악기 얼후(二胡)를 연주하고 싶었다. 그러나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 얼후를 살수 없자 직접 얼후를 만들어 연주하기도 하였다. 랑궈렌은 얼후 연주에 미쳤다. 그는 썬양음악학원의 교사가 연주하는 얼후 소리에 미쳐 20여일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교실 창 너머에서 연주를 듣을 정도였다. 이에 감동한 선생님이 그를 제자로 받아주었다. 뒷날 랑궈렌은 썬양 공군문공단에 들어가 얼후 연주자가 된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랑랑의 예술적 재능은 이런 아버지의 피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랑랑이 피아노에 재능을 보이자 아버지는 4살짜리를 당시 썬양에서 유명했던 주야펀(朱雅芬)교수에게 보냈다. 주야펀교수는 1929년 생으로 당시 썬양음악학원의 교수였다. 그는 랑랑의 최초의 전문적인 피아노 선생이었다. 이후 랑랑은 5살과 7살에 연이어 썬양 피아노 콩크르에서 1등을 하면서 재능을 보였다. 11살이 되던 해인 1993년 제5회 ‘싱하이베이(星海杯)’라는 중국 전국 소년 아동 피아노 콩쿠르에서 1등을 하였다. 이어서 독일의 제4회 청소년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등을 하면서 ‘걸출한 예술성취상’을 수상하였다. 1995년 13살에는 제2회 차이코프스키 국제청년음악가 콩쿠르에서 1등을 하였다. 그는 새로 설립한 중국국가교향악단과 협연을 하였다. 당시 겨우 13살이었던 랑랑은 피아노 독주를 했고 당시 중국 국가주석 장저민이 참석한 중요한 음악회였다. 이제 그는 미국으로 가서 공부하기로 하였다. 1996년 14살, 1924년에 개교한 미국 펜실바니아주의 필라델피아 중심부에 자리 잡은 커디스 음대(Curtis Institute of Music)에 입학하여 당시 음대학장이자 저명한 피아니스인 그로프만에게 사사를 받았다. 3개월 이후 국제적으로 저명한 ING회사와 계약을 체결하였고 이때부터 직업연주가의 길을 가게 되었다. 2년 뒤 그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독일의 도이체 그라모폰(Deutsche Grammophon)과도 계약을 하면서 가장 주목받는 예술가의 한 사람이 되었다. 1999년 17살이 된 랑랑은 세계적으로 이름을 덜치는 계기가 찾아왔다. 그것은 시카고 북쪽 부촌 하일랜드파크에서는 1904년에 시작되어 매년 여름밤에 계속되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야외음악축제인 라비니아 축제에서였다. 당시 갑작스레 건강이 좋지 않았던 앤드류 와츠를 대신하여 랑랑은 시카고 심포니와 차이코프스키 <피아노협주곡 제1악장>을 연주하게 되었다. 지휘자는 세계적인 크리스토프 에센바흐(Christoph Eschenbach)였다. 연주가 시작되기 직전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아이작 스턴(Isaac Stern, 1920.7.21~ 2001.9.22)이 청중들에게 랑랑을 소개하였다. “여러분들은 이 젊은 중국 남자의 몸에서 세계에서 가장 미묘한 소리를 듣게 될 것입니다” 박수가 터졌다. 과연 첫 연주가 끝나자 관중들은 기립박수를 쳤다. 마치 우레와 같았다. 이 대타 연주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이 연주에 대해 미국의 3대 신문의 하나인 <시카고 트리뷴>은 최고 찬사를 보냈다. “랑랑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사람들을 격동시키는 피아노의 천재다”라고 했다.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던 것은 그 날 저녁 음악가들을 위한 연주에서였다. 그는 바하의 <골드베르크변주곡>을 연주하였다. 이 곡은 랑랑이 2년동안 연주해보지 않았던 곡이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숙련된 자세로 1시간 10분에 달하는 악보를 외워 성공적으로 연주하였다. <시카고데일리>는 이 연주를 ‘음악 역사상 기적’이라고 보도하였다. 이때부터 랑랑과 세계의 모든 일류 교향악단은 속속 계약을 체결하였고 그의 음악연주의 생애도 시작되게 되었다. 2004년 11월 랑랑은 공식적으로 세계적인 명품 ‘로렉스’와 광고 계약을 맺었다. 2004년에는 독일명차 아우디와 광고계약을 맺었다. 유명인사가 되었다. 2004년에는 미국의 CNN에서 5차례에 걸쳐 랑랑 특집을 보도하기도 하였다. 이어서 미국의 CBS도 유명한 ‘60분’에 특집에 그를 소개하였다. 이 프로그램에서 중국인을 다룬 것은 중국의 지도자 덩샤오핑이 유일했다. 또한 영국의 BBC도 여러차례 특집을 보도하기도 하였다. 2006년 6월 6일 랑랑은 독일 뮌헨에서 거행되는 월드컵 개막식에 초청되었다. 중국의 CCTV는 현지의 평론가들의 말을 빌어 “랑랑은 월드컵 시합에서 가장 주목받는 중국의 아이콘”이라는 평가를 들었다. 당시 전세계 30억명이 현장 중계를 지켜보았다. 2006년 10월에는 대형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인 <랑랑의 노래-2008년에 바친다>가 베이징 고궁의 오문(午門)에서 촬영에 들어갔다. 이 다큐멘터리는 당시 중국의 국무원신문판공실이 베이징 올림픽을 홍보물로 제작하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의 대표적인 소프트 파워가 된 것이다. 2007년 5월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노브랜드인 스타인웨이(Steinway)에서 ‘랑랑표피아노’를 출시하였다. 이것은 150년간의 스타인웨이 역사상 최초로 피아니스트의 이름을 붙인 상품을 출시한 것이었다. 바로 중국의 젊은 피아니스트 랑랑이 주인공이었다.(다음 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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